세잔느(Paul Cezanne : 1839-1906)

프랑스의 화가. 남프랑스의 엑스앙프로방스에서 태어 났다. 

 모자제품업에서 은행가가 된 사람을 아버지로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린시절 친구 졸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엑스의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배웠으나 화가를 집념 하고 1861년 파리로 나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서 그림 공부를 하였다. 여기에서 기요맹, 피사로와 만난다. 후에 인상파화가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1861년과 1862년의 에콜 데 보자르 입학에 실패하며 그 사이 고향과 파리 사이를 오가면 서도 그림의 길을 걷는다. 피사로영향으로 색채를 밝게 하고 구성도 강한 질서를 잡고 있다. 제1회 인상파전 에는 <목매다는 집> <오베르 풍경>등을 출품했다. 제3회 인상파전을 고비로 차차 인상파를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구도와 형상을 단순화한 거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자연은 구형·원통형·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라고 견해를 밝힐 만큼,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여 화면에 새로 구축해 나가는 자세로 일관했다. 즉 빛에 따른 것이 아니라 물체의 형체의 세계에 깊이 파고들었다. 후에 야수파와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기가 되었다.
(세잔느는 사과를 담은 정물화나 프로방스 지방의 경치를 담은 풍경화를 그리는 것을 특히 좋아했어요. 그러한 그림들에서 그는 눈으로 본대로 사과나 경치의 겉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에요. 그림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890-1904)에서는 사과들을 어떻게 놓아야 조화와 균형이 잡힌 그 둥근 모양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세잔느가 무척 고민해서 그렸습니다. 이는 그가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사물이 지닌 모양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결국 세잔느는 모든 사물의 모양을 원, 사각형, 삼각형 등의 입체감 있는 형태로 관찰하여 그림 속에서 이를 그리게 되었어요. 그림 <커피 포트 옆에 있는 여인>(1890~5)을 살펴보면 그는 여자의 얼굴을 ‘원’으로 그리고 몸통과 팔을 ‘원통’의 모양으로 바꾸어서 그렸어요

 

21Cezanne

 

프로방스의 생트 빅토와르산

생트 빅토와르산>(1904-1906)
생트 빅토와르산은 세잔느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산의 이름이에요. 세잔느는 이 산을 수십번 이상 그릴 정도로 무척 좋아했는데, 이 그림도 역시 생트 빅토와르산의 경치를 그린 풍경화 랍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바깥의 자연 경치를 사실적으로 그린 보통의 풍경화와는 확실히 다르죠? 이 그림에서도 세잔느는 산을 본 대로 그리기 보다는 산의 가장 조화로운 모양을 그리려고 했어요. 사실 그는 산의 모양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거의 매일 산에 직접 올라가서 관찰했다고 해요. 이렇게 해서 그려진 그림에서는 산, 집, 들판이 삼각형, 사각형,사다리꼴의 딱딱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고 뒤의 산과 앞의 집들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은 채 놓여있어요.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화가들이 계속해서 사용했던 원근법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스타크의 바다
L’Estaque a Villa d’jf
인상파의 회화, 가령 모네의 작품에 보였듯이 빛에 의한 색감속에 주관성이 강조되었듯이 세잔에 의한 자연의 형체는 화가의 주관성이 깊이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즉 회화가 객관적이 사생으로부터 주관적인 감각의 표현으로 나가가게 되었구요,.,. 이런 의미에서 세잔이 세상을 떠난 1906년은 근대회화가 최고의 정상에 도달하고 19세기와 결별함과 동시에 20세기의 막을 연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그는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되고 있으며, 피카소를 중심으로 하는 큐비즘(cubisme)은 세잔 예술의 직접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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